망원정x 격주간 아티클 "망원정담" #1 망원정x 격주간 정치대담 아티클
"망원정담" #2
'쓰는 페미니스트' 김해솔 작가와의 대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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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정담'은 지금 우리가 얘기나눠봐야 할 정치적 대화의 주제를 선정, 주제에 맞는 게스트와 대담를 나누고 그 내용을 갈무리해 이메일 아티클로 보내드리는 망원정x의 온라인 기획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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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손님
망원정x를 꾸려가는 사람들만큼이나 망원정x에 함께하고 계신 회원님들이 궁금하신 여러분께 소개해드리는 망원정담 두 번째 대화의 주인공은 망원정x의 회원이자 첫 고액 후원자(!) 이신 김해솔 작가님입니다. 김해솔 님은 영화, 드라마, 소설, 동화를 넘나들며 다양한 이야기를 창작해온 ‘쓰는 페미니스트’입니다. 김해솔 님은 어떻게 망원정x와 인연을 맺게 되셨을까요? 작가님이 페미니스트로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페미니스트가 만드는 이야기는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 김해솔 작가와의 대담은 지난 2024년 12월 3일, 위헌적 계엄령이 선포된 바로 그날 낮에 이루어졌습니다. 계엄 이후 수습국면을 지나느라 이제야 대담을 공유하는 점, 작가님과 독자님 모두에게 다시 한번 널리 양해를 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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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과 자기소개
장혜영
<망원정담> 두 번째 대화의 주인공은 망원정x 회원이신 김해솔 작가님입니다. ‘망원정담’ 독자들께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김해솔
저는 한마디로 ‘이야기꾼’이라고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영화, 드라마 시나리오로 시작해 현재는 드라마를 비롯해 소설과 동화 쓰기에도 도전 중입니다
장혜영
네. 이야기꾼 김해솔 작가님을 어떻게 인터뷰이로 섭외하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 보면 좋을 것 같은데요. 최근에 교보문고에서 개최하는 스토리 대상에서 <노간주나무> 라는 작품으로 수상을 하셨는데, 그 소식을 듣고나서 저에게 한 통의 메일을 주셨어요.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주시면 어떨까요.
김해솔
사실 이야기꾼이라고 했지만 저는 오타쿠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웃음) 저에게는 혜영님이 내적 친밀감이 굉장히 높았던 분이었어요. 같은 오타쿠니까… (웃음) 만난 적은 없지만 멀리서 굉장히 많은 에너지를 받기도 했고. 뭔가 마음의 빚이 있었어요. 계산이 안 되는 빚인 거죠. 어떻게 갚아야 할지. 그런데 내가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만든 이야기로 상금을 받았으니 지금까지 마음의 빚이 있었던 분들에게 좀 갚고 싶다고 생각을 한 거예요. 제가 글을 쓰기까지 많은 도움을 받았던 분들께. 사실 망원정x 말고도 다른 단체들에도 많이 후원을 했는데요. 처음에는 답장이 없으셔서 ‘혹시 불가능한 건가? 너무 바쁘신가?’ 하다가 답장을 받아서 너무 기뻤어요.
장혜영
저야말로, ‘제가 상을 탔는데 상금의 일부를 후원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런 메일을 주셔서, 스팸메일인 줄 알고.. (웃음) 약간 눈을 의심했어요. ‘김해솔 작가’ 이렇게 검색을 해 보니까 기사가 나오는 거예요. 아, 스팸이 아니구나! 그래서 망원정x 사무국 분들께 보여드리고 답장을 어떻게 드리면 좋을까 상의를 했어요. 저는 도대체 그게 어떤 마음인지 짐작이 안 되는 거예요. 내가 글을 열심히 써서 상을 탔잖아요. 그럼 내가 인심을 쓴다고 해도 주변 사람들, 평소 고마웠던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갈 것 같은데 무려 정치인에게 상금의 일부를?! 이런 마음은 도대체 어떤 마음일까. 복잡한 마음이 들었어요. 너무 고맙고. 이런 걸 내가 받아도 되나? 그래서 저희가 고민 끝에 꽃과 후원증서와 편지를 들고 작가님을 2주 전쯤 처음으로 찾아뵙게 된 거죠.
김해솔
이것도 ‘오타쿠라서’라고밖에 설명을 못 하겠는데, (웃음) 저는 제 옆에 있는 사람보다, 어떤 매개체로 더 멀리 있지만 저에게 큰 에너지를 주신 분들에게 애정이 가요. 제가 상상력이 되게 좋거든요. MBTI 검사 하면 N이 90% 나올 정도로. 그래서 혜영 님이 상상 속에서는 제 친구 같은 사람이었어요. 사회적으로 사람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에 대해서도 용기 있게 발언해 주시고, 그런 것들에서 저는 보호받았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혜영 님한테 빚이 있다는 마음인 건데요. 내가 하고 싶지만 하지 못했던 말을 나를 대변해서 해 주셨던 그런 순간들마다 빚이 있다는 생각이 들고, 어느 시기에 제가 그 말의 보호를 받았다라는 감각이 크기 때문에 너무 당연히 드리고 싶었던 거예요. 오히려 저는 이런 영향력을 혜영 님이 잘 모르고 계신가? 상상을 못하셨나 보다 했죠.
장혜영
맞아요. 늘 전선에 서서 발언을 하다 보면, 내 등 뒤에 사람들이 있지만 동시에 눈앞에서 대치하거나 적대하는 사람들이 시야에 많이 들어오거든요. 다른 한편으로 나와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의외로 많이 없어요. ‘누군가 분명히 있겠지’ 라고 생각은 하지만 이렇게 엄청 구체적인 방식으로 느낄 수 있게 되는 순간은 많지 않죠. 되게 귀한 경험이었어요. 아무튼, <노간주나무>의 수상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이 작품은 언제쯤 읽어볼 수 있나요?
김해솔
원고는 다 완성된 상태지만, 편집 과정을 거쳐서 내년 여름쯤 나올 것 같아요.
장혜영
그리고 지금은 동화책을 작업하고 계시죠. 혹시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김해솔
동화책은 <고양이가 되고 싶은 강아지> 라는 제목인데요. 몇 년 전부터 마음에 품고 있었던 책이에요. 종을 넘나드는 경계에 있는, 그러니까 강아지로 태어났지만 고양이로 살아가고 싶은 존재의 이야기인데요. 어른들도 읽을 수 있고, 아이들도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어요.
저는 제가 ‘작가’라기보다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매체가 동화든, 영화든, 드라마든 그런 건 저에게 크게 상관이 없고, 이야기가 동화에 맞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 동화를 쓰고, 그런 식이에요. 초반에는 영화나 드라마에 치중을 했는데, 영화나 드라마는 100개를 쓰면 5개가 실제로 만들어질까 말까 할 정도로 제작이 쉽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저도 숨쉴 구멍이 필요했고, 다양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서 동화를 제작해 봐야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저도 동화는 처음이거든요. 출판을 위해서 직접 출판사를 차리기도 했는데 우여곡절이 많습니다. (웃음)
제작이라는 걸 처음 해 보니까, 그동안 제가 제작자들에게 가졌던 불만들이 이해가 되면서 그들도 이런 어려운 과정을 겪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역시 사람은 여러 가지를 경험해봐야 하는구나 싶기도 하고요. 제작자들이 나에게 했던 말이 굳이 나를 힘들게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겠다는 걸 깨달으면서 힐링이 되기도 하고요. 삶의 밸런스를 맞춰가고 있는 과정인 것 같아요.
장혜영
그렇군요. 저희가 지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공간이 ‘플랫폼P’,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라고 하는 곳인데요. 여기서 작업하는 건 어떠세요? 도움을 좀 받고 계신가요?
김해솔
물론이죠. 제가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병아리 출판사 대표인데, 지자체의 지원으로 작업실을 사용할 수 있게 되어서 프리랜서로서 너무 좋죠. 일단 내가 어딘가로 출근해서 가방을 내려놓고 뭔가 편하게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공간이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해요. 멘토링 같은 프로그램들도 있고요.
예전에 직장생활을 몇 년 하다가 작가가 됐어요. 조직생활이 싫어서 오게 된 케이스거든요. 한 10년은 너무 좋았어요. 나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오로지 나 혼자 하는 일을 하고 싶다 해서 했는데 오래 하다 보니 외롭더라고요. 작가들은 점조직에 가깝거든요. 먼 사람에게 와이파이처럼 혼자만 내적 친밀감을 느끼고, 접속했다가 끊어지고, 이런 식의 삶이었는데 그 삶이 되게 외롭더라고요. 내가 원하는 건 이야기를 통해 독자를 만나는 건데. 그래서 좀 부딪혀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플랫폼P에 와서 저 같은 사람들이 옆에 있는 걸 많이 보고, 일상을 함께하는 게 너무 좋더라구요. 혼자 일하다 보면 말할 사람이 별로 없어요. 고양이한테 말하고, 남편한테 말하고… 동료로서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여기 와서 하는 스몰토크나 안부 인사. 이런 것이 되게 소중하게 느껴져요. 오늘 날씨 어때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요. 일상이 생겨서 너무 좋고, 여기 와서 느슨하게 연결돼있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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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 '플랫폼P'에서 만난 김해솔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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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던 어린이는 어떻게
'살고 싶어서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을까
장혜영
지난 번에 저희가 만났을 때, 드라마나 영화 쪽에서 글쓰기를 먼저 시작하셨다고 이야기를 하셨었잖아요. 현장에서 페미니스트 캐릭터를 어떻게든 넣어보려고 했지만 마지막까지 분투했던 것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의 좌절에 관한 이야기가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이야기꾼으로서의 작업의 최초의 시작, 그리고 지금 <노간주나무>까지 오게 된 경로를 간략하게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원래 전공은 뭘 하셨어요?
김해솔
전공은 국어국문학이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해서. 밥 먹으면서 책 보고 그런 애였어요. (혜영 : 너무 뭔지 알겠어요. 저도 똑같은 애였어요 ㅋㅋ)
책을 굉장히 좋아했고 집에 있는 백과사전도 다 읽을 정도로 많이 좋아했는데. 초등학교 4학년 때 만화책에 빠진 거죠. 그 때는 동네에 도서대여점이 있었어요. 도서대여점 사장님이 만화책 빌리지 말라고, 중학생 되면 읽으라고 하셔서 실랑이를 하기도 했었는데. (웃음) 그때부터 만화책의 세계로 빠진 거죠. 순정만화부터 시작해서 해적판 만화들도 많이 읽고.
계속 저는 장르가 바뀌었던 것 같아요. 어릴 때는 <퇴마록> 이런 거 좋아했어요. 장르물. 순정만화로 갔다가 드라마에 빠졌다가. 생각해보면, 저는 책보다는 이야기를 좋아했던 거죠. 고등학교 때 수업시간에 고전을 연극으로 바꾸는 그런 게 있었어요. 수행평가 같은 거. 그때는 연출자나 감독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오, 너무 재밌는데? 너무 잘 되는데?’ 라는 생각이었죠.
그렇게 자연스럽게 국문과를 가서 방송작가를 하겠다고 생각하다가 그 다음으로 구성작가를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는 선배를 따라다니다가 ‘이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때는 또 게임에 빠져 있어서 게임 만드는 회사에 입사를 했어요. IT 기획자로 시작을 했죠. 사실 스토리가 가미된 매체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거기도 되게 남초 집단이었죠. 회식하면 PC방 가고. 게임을 배워야 회식에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였죠. 그 때 와우 배워서 열심히 하고.. (웃음)
일을 하다 보니, 난 전반적으로 문화 자체에 관심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부부처 대변인실 홍보담당자로 일을 시작했어요. 그 때는 온라인 홍보나 정책 기사들 쓰는 일을 주로 했죠. 하지만 정부의 정책을 보고 사회초년생 때 너무 실망을 하게 된 거죠. 포부가 컸던 것에 비해서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나?’ 라는 생각에 큰 좌절을 했어요. 조직문화도 좋지 않았고요. 위에서 지시가 내려오는 대로 써야 하고, 쓰면서 내 자신이 망가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글을 되게 좋아해서 여기로 왔는데 글 자체가 싫어지더라고요. 글이 안 읽히고 우울증이 심해져서 방황도 많이 하고 그랬어요. 그래서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게 뭘까, 그걸 해 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예전부터 하고 싶던 글을 쓰게 된 거죠.
저에게는 글쓰기가 치유, 치료에 가까운 거였어요.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생계고 뭐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기로 한 거예요. 처음에 우울증 걸린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썼어요. 그랬더니 제가 나아졌어요. 메타인지가 되면서. 그러면서 우울증에서 빠져나오게 되더라고요. 뭔가 답답하거나 힘든 게 있으면 그걸 쓰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10년 전에 시나리오 공모전에 처음 당선돼서 ‘아, 그러면 이걸로 먹고살수 있지 않을까?’라는 착각을 하게 된 거죠. (웃음) 첫 시나리오는 되게 과격한 이야기였어요. 시한부 여고생이 첫경험을 하고 싶어서 최애를 납치하는 이야기… 그런데 지자체 공모전이니까 지역성을 넣어서 쓴 거예요. 근데 된 거죠. ‘어 이게 통하네?’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 때부터 이상한 여자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거죠. 대중적 코드를 넣어서 쓰는 게 통하고, 내가 이걸 잘한다는 걸 깨닫게 된 거예요. 조금 이상하고 정상 범주에서 벗어나는 여자 이야기를 쓰기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쓰게 된 거죠.
다만 그런 이야기들을 좋아해주시는 것과 별개로 제작이 되기는 쉽지가 않아요.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하잖아요. 작가가 오리지널을 쓰기가 쉽지가 않더라고요. 그때 고민을 많이 했죠. 내가 연출을 해야 하나? 소설을 써야 하나? 그럼 영화 시나리오를 드라마로 바꿔 볼까? 그래서 원래 있던 영화를 드라마로 바꿔서 써 봤는데 운이 좋게 공모전에 당선이 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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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솔 작가의 이야기에 푹 빠져있는 망원정x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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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보면
페미니스트가 참 많은데
이 작업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
장혜영
그런데 드라마의 현장은 또 대중성과의 끝없는 밀당이잖아요?
김해솔
드라마 시장은 영화보다 더 깎아내야 하더라고요. 저는 B급 정서, 그리고 이상한 여자를 너무 사랑하는데, 조금만 드러나도 이거 너무 비호감이야. 이렇게 해 버리니까. 당시에 제가 썼던 이야기도 ‘내집 마련을 하고 싶어서 스스로 집값을 떨어뜨리는 여자의 이야기’였어요. 그때 제가 집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과격한 생각들을 하기 시작한 거죠. 연쇄 살인범이 내 집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집값이 떨어질까? 이런 생각들.. (웃음) 원작은 블랙 코미디에 가까운 범죄물이었는데 드라마로 바뀌면서 조금 더 소동극에 가깝게, 알콩달콩한 느낌으로 로맨스도 섞어서 가게 된 거예요. 단막극이었는데 단막극은 많이 만들어지는 추세가 아니라서 잘 안 됐죠.
드라마 공모전에 당선되면 6개월동안 트레이닝을 거치는 과정이 있어요. 한 달에 단막극 하나씩을 써내는 과정을 거치거든요. 그걸 하는데 시간이 너무 촉박하니까, 그들의 입맛에 맞는 걸 할 시간이 없어서 제가 원래 썼던 작품들을 다 냈는데, 드라마로 만들어지기 어려운 내용들이었어요. (웃음) 어쩔 수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그런 것들을 내다 보니까 한 PD님이 제 성향을 파악하시고 한 작품을 가져오셨는데, 페미니스트가 주인공인 소설이었어요. PD님도 되게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시는 분이어서, 그 작품을 하게 된 거죠. 보통 드라마는 4회까지 쓰고, 제작진들이 대본을 함께 읽어 보고, 메이드가 안 될 것 같으면 뒷 부분을 쓰진 않거든요. 그런데 저는 페미니스트가 주인공인 드라마에 여배우가 출연을 결심하려면 결말을 다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왜냐면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그 배우가 (페미니스트라는 낙인 등) 져야 할 리스크가 너무 크잖아요. 그래서 수정의 과정이 너무 길었죠. 이게 이렇게까지 안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을 많이 했어요. 주변에 보면 페미니스트가 참 많은데, 왜 이 작업은 이렇게 어려울까 싶었죠. 지금 드라마들 봐도 주인공들 다 페미니스트지만 ‘나 페미니스트입니다’ 라고 말만 안 하는 거거든요. 페미니스트라고 명명하는 순간 꼬리표가 크게 달리니까요. 비록 제가 쓴 버전은 제작이 되지 못했지만 언젠가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을 해요. 여전히 싸우고 계신 분들이 있으니까요.
장혜영
보통 그렇게 한 편을 작업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김해솔
저는 그 작품 작업할 때 2년 정도 걸렸어요.
장혜영
그렇게 공들여서 작업을 하셨는데 결국 제작이 안 됐을 때 좌절이 너무 크실 것 같아요.
김해솔
페미니스트가 이상한 사람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제일 이상한 캐릭터 중 하나로 여겨지죠. 하지만 이런 작품을 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셔서 오히려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죠. 신인 작가가 원작이 있는 작품이 아닌 오리지널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도 하지만 저는 오히려 이게 나의 쓰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원작이 있는 작품들을 대중적 감각으로 풀어낼 수 있는 건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겠다. 이런 작품을 드라마에 맞게 풀어내는 것들이 내가 내 자리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출판 쪽에 계신 분들이 먼저 용기를 내 주셔서 콜라보하는 느낌도 들었고요. 누군가가 애써서 여기까지 왔으니까 내가 다시 여기서 바톤을 들고 가는 느낌?
장혜영
그렇군요. 그런데 작가님은 엄청 다양한 종류의 글쓰기를 하고 계시잖아요. 원작이 있는 것을 바톤터치 해서 대중들에게 보여주는 작업도 하시면서 동시에 지금은 원작을 쓰는 일을 하고 계신 건데. 이 두 작업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요?
김해솔
제가 이 일을 10년 했는데 제 이름으로 나온 작품이 없는 거예요. 달려올 때는 힘들지 않았어요. 매 프로젝트가 의미있고 재미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친 시점에서 돌아보니까 목마름이 있었던 거죠. 대중들과 직접 닿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목마름이 컸고. 회사에 오리지널 작품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게 드랙퀸 이야기였어요. 당시 넷플릭스 <포즈>,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 에 빠져 있었거든요. 그걸 소재로 해서 옷 만드는 여자와 드랙퀸이 되고 싶은 소년의 이야기를 한 1년정도 개발을 했는데, 너무 캐스팅이 힘들다는 거예요. 출연할 남자 배우를 구하는 게 너무 힘든 거죠. 퀴어 이야기이다 보니까. 그런 것들이 힘들어지면서 내가 하려고 하는 게 너무 힘든 것들이 많구나. 계속 힘든 것만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일들이 축적되다 보니까 제 자신을 못 돌봤어요. 사명감도 컸고. 내가 아니면 못해. 누군가 해야 한다면 내가 해야 해. 이런 마음들이 있어서 몸이나 마음이 아팠어요. 진통제를 매일매일 먹으면서 일한 게 1년 정도. 그렇게 하니까 몸이 많이 망가졌죠. 하필 그때 키우던 고양이가 갑자기 떠났어요. 내가 가장 가까이 있는 존재도 못 돌보면서 뭐 하는 거지? 이렇게 정신이 번쩍 들어서, 내 이야기를 작게나마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렇게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소설을 쓰면서 공모전에는 출품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었어요. 본의 아니게 영화, 드라마 모두 공모전에 당선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영향력을 크게 갖고 메인 시스템 안에서 일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공모전이 능사가 아니라 작은 이야기부터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공모전에 내지 않고 직접 출판하려고 <해파리북스>를 만든 거죠. 그런데 작품을 주변에 보여줬더니 공모전 입상하면 돈도 많이 주는데 내보라는 반응이 많은 거예요. (웃음) 되든 말든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냈는데 너무 운좋게 수상을 한 거죠. 간절히 바랄 때는 안 되다가 마음을 다 내려놓으니까 갑자기 되네, 진작 마음을 내려놨어야 됐나? 라는 생각도 했어요. 나에게 그게 좀 필요했구나. 너무 큰 짐을 지고 산을 올라가는 게 아니라, 산책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길게 보고 살아야겠다는 마음? 저에게는 이 소설이 해방이었어요.
장혜영
쉬엄쉬엄이라기에는 장편 소설인데요. (웃음)
김해솔
드라마 작업을 하던 맷집이 있다 보니 가능했던 것 같아요. 소설을 쓰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어요. 제가 너무 몸이 아픈 상태로 작업을 시작했는데 이 소설을 다 쓰고 몸이 나은 거에요. 이게 나를 살렸다. 이 긍정적인 에너지가 독자들에게 꼭 전해질 것이다. 이런 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소설이 돌봄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작업을 하면서 저에게 돌봄이라는 게 굉장히 큰 화두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혜영 님의 <어른이 되면>을 다시 읽는데 저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코어 가치가 너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따지고 보면 저의 글쓰기도 누군가를 돌보고자 하는 목적이 큰 것 같거든요. 조금 이상하고 미친 여자들을 대변하고 싶어서 글을 쓰는 거 같기도 하구요. 그리고 사실은 내가 나를 돌보려고 여기까지 온 거구나. 이걸 이제야 깨달은 거죠. 나의 해방과 다른 사람의 해방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깨달은 거예요. 남을 돌보는 게 나의 돌봄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요.
<노간주나무>는 단순히 소설이 아니라, 제 생애 주기에서도 되게 큰 변화를 준 존재인 것 같아요. 그래서 혜영 님도 이렇게 만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원래 모든 걸 이야기 안에서만 해결하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이제 좀 밖으로 나와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장혜영
이제 새로운 시작이네요. 정말 이야기의 힘으로 살아오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처음의 ‘이야기꾼’이라는 자기소개가 손색없이 어울리네요.
김해솔
생각해보면 저는 이야기보다는 그 이야기 안에 있는 사람에 기댔던 것 같아요. 그 사람을 대변하고, 돌보고, 그러면서 내가 치유가 되고, 서로서로 기대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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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야기의 힘으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
장혜영
공감할 수 있어요. 우리는 사실 이야기의 힘으로, 정확히는 이야기 속 사람들과 교감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죠. 우리는 서로의 인생에 나타나는 등장인물이기도 해요. 사실 지금 ‘이상하고 미쳐 있는 여자들’이 너무 살기 힘든 세상이잖아요. ‘페미니즘 리부트’라고 우리가 부르는 시기에는 이에 관한 텍스트가 잠시 폭발했었죠. 여성들의 삶에 관해 사람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여러 책들이 출간되고 독자들이 함께 읽기도 하고요. 그런데 지금은 또 완전히 위축된 시기가 되었어요.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얘기를 하는 것이 사회생활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되게 부담스러운 일이 된 지금, 작가님도 이런 사회 분위기를 우려하고 계실 것 같아요.
김해솔
이것도 흐름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과거에 비하면 지금 되게 나아졌다고 생각하거든요. 드라마 시장도 그렇고, 사실 어떻게 보면 모두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죠. 저는 변화할 것이고 나아질 것이라고 믿어요. 하지만 답답함이 사라지진 않죠. 저는 주로 힘들 때 책에 기대는데요. 리베카 솔닛의 <어둠 속의 희망>에서 힘을 많이 얻었어요. 절망적인 세상 속에서도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는 내용이잖아요. 저도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어쨌든 변화는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거죠. 솔직히 말하자면 믿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망원정x도 시기적으로 적절한 시기에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일상의 영역에서 정치적 대화를 할 수 있게끔 역할하는 것. 큰 이야기를 던지는 것보다, 그게 더 효과적일 수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해요. 플랫폼P라는 공간에서 작업하면서 그걸 더 강하게 느껴요. 사회적으로 민감하다고 하는 그 이야기를 모두가 하고 있지만, 여기(플랫폼P)에서는 전혀 이상한 분위기가 아니에요. 일상적 영역에서 우리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축적되고 있다는 가능성을 보는 거죠.
서로가 연대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혼자만 있으면 그걸 알아채기 힘들거든요. 뉴스에는 나쁜 소식이 더 많이 보도되죠. 좋은 영향력을 일상의 영역에서 펼치려는 시도가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요. 망원정x에서 하시려고 하는 게 일상적인 대화를 연결하는 것이잖아요.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게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장혜영
지층이 필요하죠. 지층은 사건이라기보다 일상에서 쌓이는 것이니까. 특히 정치적인 것으로 분류되는 것들이 일상에서 찾아보기 어려워지는 거예요. 정치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이 터부시되고. 그런데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없죠. 정치는 사실 되게 일상적인 옳고 그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특정 사람들만, 정치인들만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좋은지, 어떤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보다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적 변화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김해솔
일상은 원래, 자연스럽게 있는 거죠. 그리고 이걸 정치와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건데. 혜영님이 잘 고민해주시리라 믿어요. (웃음) 조금의 연결고리만 있다면 아주 큰 연결이 가능할 거라 생각해요.
장혜영
맞아요. 우리가 매일 하는 이야기들이 사실은 정치적 대화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요. 망원정x를 통해 사람들을 모으고, 얘기를 하다 보니 “이게 되네?” 라는 느낌을 갖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다른 자리에서는 마이크 잡기가 부담스럽지만 여기서는 내 얘기를 해도 될 것 같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고. 그래서 저도 손으로 더듬어가면서, 일상적인 공간을 만들어 가게 되는 것 같아요.
김해솔
좋은 정치는 잘 듣는 게 아닐까요? 얘기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너무 많고, 이야기도 너무 많은데, 빛을 발하지 못하고 묻히는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요. 이야기들이 산발적으로 있는데 그걸 어떤 주제로 모을 것인가에 대한 기획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고양이 밥 주는 문제도 정치적인 문제잖아요? 나는 길고양이들 밥을 주고 싶고 집을 만들어주고 싶은데 이걸 누가 계속 부순다, 그러면 문제가 생기는 거죠.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모이고 연결되면 정치적 움직임이 되는 것 아닐까요? 말하고 싶은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중요하고요. 자리를 깔아 주는 것이라고 할까?
장혜영
맞아요. 하고 싶은 말이 있음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사람들도 정성껏 요청하면 말을 하게 되고, ‘아,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봐요’ 라고 말씀하시는 순간들을 가끔 보게 돼요. 잘 호명하고, 잘 듣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이야기를 만들 때 그 이야기 안의 인물들을 돌보고 싶은 마음이라 하셨잖아요. 정치도 비슷해요. 다만 실제의 삶이라는 것이 좀 다를 뿐. 내가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을 지키기 위해 내가 어떻게 말로 집을 지어야 하지?’라는 고민이 있는 거예요.
김해솔
망원정담 #1에서 태린님이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라고 하신 게 기억에 남았어요. 제가 이야기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거든요. 하는 사람도 재미있어야 하고, 듣는 사람도 재미있어야 하죠. 그래야 지속이 가능하거든요. 내가 재미 없으면 모든 건 끝난다고 생각해요. 이 소재가 지금 필요한가?를 떠나서, 내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것, 취미를 조금 더 확장해서 그걸 좀 더 나은 것으로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예전에 캣맘 생활을 한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집주인 분이 제가 고양이 밥 주는 걸 모르고 “고양이 밥 주는 사람 걸리기만 해라” 이렇게 욕을 하신 적이 있어요. (웃음) 저도 갑자기 인수인계를 받아서 그 일을 시작하게 된 거였어요. 그 동네의 캣맘 분이 이사를 가시면서 저한테 역할을 부여하신 거예요. 그런데 그 일을 하다 보니 제 발걸음 소리만 들려도 고양이들이 막 달려와요. 조용하게 하고 싶었는데 제 존재가 숨겨지지 않는 거죠. 저한테는 그게 너무 큰일이었거든요. 그리고 활동을 하다 보니 캣맘들끼리의 모임이 생기고 같이 밥도 먹으러 가고 지역 정보도 공유하고 그랬어요. 어떻게 보면 이런 것도 정치가 아닌가? 라고 생각했어요.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면 고양이들이 음식물 쓰레기를 뜯거나 하지도 않고, 사회적으로 좋은 영향을 미치잖아요. 그런데 제가 혼자 총대를 메고 하려니 힘든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조금만 더 모여서 같이 목소리를 내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장혜영
어떤 것에 관심이나 정치적 자원을 투여하는 순간 공격하는 사람들이 생기죠. 그것에 대한 방어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게 사실은 제가 했던 주요한 역할인 것 같아요. 다만 이건 재미의 영역은 아니죠. 저도 재미가 참 중요한 사람인데 의무감이나 책임감이 더 크게 작용했던 것 같아요.
김해솔
너무 큰 부담을 갖지 않으셨으면 해요. 어떤 일이 영원히 이어질 수는 없으니까, 지속 가능할 때까지 하고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해체되고. 그것도 저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장혜영
맞아요. 활력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패턴을 찾는 게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그런데 쉽지 않은 부분들이 많죠. 재미있게 풀어내기 쉽지 않은 일들도 많고요. 최근에는 여대를 남녀공학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어요. 학교가 학생들을 고소하기도 했고요. 사회적으로 여성들에 대한 괴롭힘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 핵심인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작가님은 어떻게 보세요?
김해솔
너무 확실한 건 보호망이 없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체념의 정서가 저는 제일 우려돼요. 불합리한 것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 그것에 신경쓸 여력이 없고, 다 자본주의 논리로 가고 있잖아요. 학교가 학생을 보호하지 않고. 저는 제일 중요한 건 앞장서는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 그 사람들이 지치지 않도록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 같아요.
장혜영
일단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부터 시작인 것 같아요. 정확한 논점을 가지고 이 문제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것.
김해솔
저는 여중, 여고를 나왔는데 그 공간에서 성장하면서 저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모든 게 시장의 논리로 이어지는 과정에서도 꼭 지켜야 하는 것들이 있죠.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남으로서 에너지가 생기는 거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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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는 소중한 마음을
어떻게 살려놓을 수 있을까
장혜영
이미 앞에서 나눈 대화에 녹아 있는 이야기이긴 하지만요. 방송국, 영화라는 상업 공간에서는 긴장을 견디는 순간들이 많으셨는데, 비슷한 공감대를 가진 사람들이 많은 플랫폼P라는 대안 공간으로 이동을 하신 셈이죠. 이 이동은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였나요?
김해솔
사실은 그 생각은 못 했었고, 작업실이 필요해서 온 거였는데요. (웃음) 와서 생활하다 보니, 분위기라는 게 너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비슷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는 게, 상상력을 넓히는 데 큰 도움을 주는 거죠. 일상에서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너무 부족해요. 직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나면 따로 시간을 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너무 힘들잖아요. 그나마 SNS를 통해 연결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건데. 물리적 공간이 아니더라도, SNS에서라도 비슷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버틸 힘이 생기죠. 제가 후원을 한 것도 그런 의미였어요. 모든 현장에 내가 몸으로 갈 순 없지만 어떻게든 힘을 보태고 싶다는 마음.
장혜영
맞아요. 많은 것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통해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무엇에 대해서 이야기해나가면 좋을까요?
김해솔
제가 요즘 하는 고민은 ‘나에게 있는 소중한 마음을 어떻게 살려놓을 수 있을까?’인 것 같아요. 이 마음을 지킨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외부적 요인들이 이 마음을 살지 못하게 하는 거죠. 내가 살아가도록 하는 그 ‘마음’이라는 것을 살려 놓는 것이 저의 가장 큰 화두예요.
제가 출판사 이름을 해파리라고 지은 이유가 있는데요. 해파리가 헤엄칠 때의 박동이 사람의 심장박동과 같대요. 뇌랑 심장도 없구요. 하지만 이 지구상에서 6억년을 살아낸 생물이기도 하잖아요? 그 생명력이라는 게 궁금했어요. 저에게는 저를 살려 놓는 것이 ‘이야기’였거든요. 그래서 제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심장과 같이 박동해서 그 심장박동을 조금이라도 더 길게 이어지게 하고 싶은 거에요. 그 사람이 하루라도 더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인 거죠. 그 살았으면 하는 대상이 저 자신이기도 하고요. 저에겐 ‘이야기’가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살고 싶게 하는 마음이라는 게 뭘까,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저는 이야기로서, 혜영님은 정치로서. 각자 자신의 도구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그 방법을 고민하는 장소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일상을 잘 즐기면서 그 안에서 조금의 변화를 꾀하고자 하는 것이죠.
장혜영
때로는 해파리의 삶의 방식에서 영감을 얻을 필요가 있죠. 모두에게 해파리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웃음) 오늘의 이 자리가 최소한 저에게는 심장 박동을 한 번 더 할 수 있게 만드는 자리였어요. 읽는 분들께도 그 마음의 힘이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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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기 시작하는 마포를 내려다보는 장혜영 망원정x 대표와 김해솔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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