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영
저는 계속 얘기를 들으면서 ‘여성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주제를 우리가 다루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장태린
저희 A님 입학 포기 사건 때 입학을 반대하는 학생들이 모인 오픈 카톡방이 있었어요. ‘지정성별’ 여자인 걸 인증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세 가지 인증을 받은 거예요. 손목 사진과 주민등록번호 뒷자리와 목소리. 그럼 털이 많고 손목이 굵고 목소리가 낮은 여자는 들어갈 수가 없는 건가? 여자란 무엇인가.. 이런 고민을 하게 된 거죠. 한참 탈코르셋 담론이 얘기가 될 때, ‘우리는 우리의 외관이 어떻든 상관이 없다’ 이게 주된 얘기였잖아요. 근데 오히려 후퇴한 거죠. 지금 생각하면 되게 너무 얄팍하고 웃긴 논리인 거예요.
장혜영
저도 젠더정치에 관련된 주제들로 논쟁을 하다 보면, ‘여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가 제일 어려워요. 그런데 성별에 관해 성기 환원적, 염색체 환원적인 관점을 가진 분들은 그런 저의 곤란함 앞에서 성별 이분법적으로 축적된 압도적인 문화적 권위에 기대어 의기양양하게 ‘너 여자가 뭔지 몰라?’ 이렇게 얘기를 하죠. (해이 : 여자를 사랑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인 것 같네요.)
어쨌든 이 자리에 앉아있는 우리도 성별 이분법적인 사회에 태어났잖아요. 지금 구조 너머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 역시 구조 안에서 태어났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지금처럼 젠더라는 것이 수행적인 것이며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둘로 딱 나누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받아들이게 되었나요?
김강리
전 제가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에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가 됐다고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러니까 저에게 있어서 “내가 페미니스트가 된다”라는 것은 “주어진 것을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라는 선언”이에요. 그러니까 “네가 여자라서 이런 걸 해야 해” 라는 말을 들으면, “내가 왜?” 이거에서 시작이 된 거였어요. ‘성 역할과 성별이 관계가 없다면 무엇이 나를 여성으로 호명할 수 있게 하는가?’ 라는 질문에 답하기 굉장히 어려웠어요. 그렇다고 제가 남자는 아닌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제가 처음에 가장 많이 썼던 단어는 ‘에이젠더’였어요. 난 젠더를 감각할 수가 없다. 다른 사람들처럼 되게 명료하게 나의 젠더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확신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 말을 썼죠. 사실 제가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건 조금 더 정치적인 이유이기는 해요. 우리가 젠더라는 것을 어떻게 해야 넘나들고 더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 속에서 이 단어를 되게 정치적으로 선택을 했어요.
저는 굉장히 급진적인 관점에서 “페미니스트라면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가 되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웃음) 주어진 것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는 사람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를 수 있겠어요. 우리가 이 사회를 살아갈 때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페미니스트의 입장에서 다시 본다는 건 되게 다른 형태의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일이라고 늘 느껴요. 제가 언쟁을 할 때 너무 화가 나는 순간은 자꾸 “이준석이 이렇대”, “디씨에서 이랬대” 라는 말을 마주할 때예요. 의심하고 회의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페미니스트로서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해이
전 탈코르셋 운동 하시는 분들과 논바이너리들이 본질적으로 대체 다른 게 뭐가 있나 싶어요. 탈코르셋 운동도 자신이 사회적인 여성 수행을 하지 않고 여성으로서 보이지 않는 것이 목적이잖아요. 논바이너리와 다를 게 없습니다. (웃음)
저에게 있어서 젠더 이분법적인 세계에 속하지 않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어요. 중학생 때 정체화했다고 했잖아요. 저는 더 어릴 때부터 항상 뭔가 느끼고 있었어요. 젠더 디스포리아도 늘상 있었고.. 제가 운이 좋게도 본명이 성중립적으로 느껴지는 이름이기도 하고, 어릴 때 항상 머리가 짧았어요. 그냥 부모님이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렇게 하셨고, 옷도 바지 입혀서 등하원을 시켰고, 초등학교 중학교 때에도 숏컷을 유지한 상태였어요.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미스젠더링(다른 젠더로 인식되는 것)을 굉장히 많이 당했어요. 화장실 들어가면 사람들이 한번씩 나를 보고 가고, 목욕탕 가면 내 몸을 보고 가고… 그런 경험이 저한테 너무 잦은 일이었어요. 어릴 때 놀이를 할 때도 남자애들이랑 섞여 놀아서 왕따를 당한 적도 있었고. (강리 : 나도 그랬어요.)
심지어 미디어를 볼 때도 남자한테만 눈길이 가는 거예요. 제가 남자를 좋아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남자처럼 되고 싶은 거였어요. 그런 일련의 감각들을 거치고 살다가 ‘논바이너리’라는 단어를 알게 된 거죠. ‘이게 바로 나야!’ 하고 발견을 하게 된 거여서, 애초에 젠더라는 게 어떤 고정적인 게 아니라 남들이 보기 나름이고 내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걸 너무 당연히 알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장태린
저는 시스젠더 여성으로 정체화하는 사람인데, 젠더 디스포리아를 느껴본 적 없었던 사람으로서 ‘성적 지향’에 대해 인지한 순간으로부터 ‘나에게 다른 가능성이 있었구나? 되게 흥미롭다.’ 그렇게 느껴졌어요. 그냥 아무런 의심 없이 나는 시스젠더 헤테로 섹슈얼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 자체가요. 남들이 어떤 정체성을 가졌든 그건 나에게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나도 지금까지 몰랐던 걸 새롭게 알게 됐고 향후에 어떻게 내가 변화할지 모르는 거니까. 그냥 그렇게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대학을 오고 나서 주변에 너무 자연스럽게 젠더퀴어, 트랜스젠더 친구들이 있었던 것도 영향을 미쳤던 것 같고요.
장혜영
저는 사실 편하고 싶어서 대충 시스젠더 여성으로 정체화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해이 : 마음 편한 게 최고입니다.)
해이
농담 섞어서 이야기를 하자면, 저를 포함해서 제 주변 트랜스젠더 친구들이 많이들 머리를 기르고 있어요. 머리가 짧아야 디스포리아가 좀 덜한데도 불구하고 머리를 기르는 이유는 취업 때문이에요. 그래서 저는 “이건 일종의 장기적 드랙(사회가 규정한 성별의 정의에서 벗어나는 모습으로 꾸미는 행위)이다” 라고 말하고 다녀요. 이건 수행일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머리를 기르는 게 좀 놀이 같기도 해요. (혜영 : 맞아요. 저도 국회의원 드랙을 한다고 생각하면서 지난 4년을…)
김강리
비슷한 얘기를 하자면 제가 탈코르셋 붐이 오기 전에 머리를 잘랐어요. “왜 여자는 머리가 길어야 되지?” 싶어서 그냥 잘랐었어요. 그때 머리가 정말 짧았었거든요. 한 4밀리미터? 그런데 다시 머리를 기르게 된 계기가 있어요. 제가 2015년부터 원래 다니던 청소년 센터에 대학생 봉사자로 가기 시작했는데, 한 친구가 저한테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면서 되게 쭈뼛대는 거예요. 들어 보니 퀴퍼를 다녀왔다는 얘기였어요. 내 외관이 이 친구에게 어떤 거리감이나 두려움을 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어요.
해이
저는 애초에 머리가 짧고 화장도 안 한 전형적인 탈코르셋한 여성의 모습이라서, 학교에서 우연히 마주친 래디컬 페미니즘 동아리 부원께서 굉장히 반겨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저 그거 아니에요” 라고… (웃음) 사실 짧은 머리는 굉장히 많은 노력이 필요한 스타일이란 말이죠.
김강리
내가 스스로 나를 어떻게 감각하는가와 별개로 구조적 성차별이라는 것은 나를 강제적으로 여성으로 분류한 다음에 일어나잖아요. 그래서 저는 여성의 범주를 넓힌다는 것의 의미는 여기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라고 해서 여성혐오를 안 당하는 것이 아니고, 고용 성차별 안 당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이때 이것을 어떻게 같이 논의할 수 있을까. 이 사회가 우리를 강제적으로 분류하는 이분법에 대한 문제제기 아래서 페미니스트들이 모였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해이
진짜 맞아요. 트랜스 혐오자들이 하는 말 중에 ‘나도 트랜스젠더 남자 돼서 임금 더 받을래’ 이런 것이 있잖아요. 만일 그게 가능하다면 성차별을 타파하는 의미가 있겠죠. 근데 그렇게 하지 않죠. 다들 알고 있는 거예요. 사실 알고 있지만 부정하고 있는 거죠. 내가 트랜지션을 한다고 해서 ‘남성 권력’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장혜영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는 강리님 말씀처럼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깊이 마주할 때, 지정성별과 불화하는 내 존재의 부분을 발견하고 직시하면서 자기의 젠더 정체성을 재규정해나가는 작업이 있어요. 하지만 설령 이 작업이 성공적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다른 한편에 ‘이 세상에 성별은 둘이고 넌 둘 중 하나야. 만일 그 안에 네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네가 이상한 거야’라는 강고한 관점이 대부분의 일상생활을 규정하고 있는 현실과 자기 정체성을 조화시켜나가야 하는 상시적인 과제가 있는 거죠.
우리 사회는 굳이 성별로 나누지 않아도 되는 많은 일들을 오랫동안 젠더화해서 분류하고 위계서열화하고 분리해왔죠. 그런 분리와 차별은 문화적으로 굳어졌어요. 그렇게 구조화된 여성에 대한 차별은 분명히 문제이지만, 그와 별개로 여성은 성별이분법적 세계관 안에서 어쨌든 이 세상에 ‘당연히 있는 존재’로 분류되었다는 점에서 최소한 그 존재 자체를 증명하기 위한 투쟁을 하지는 않아도 되는 지위를 인정받아왔다고 할 수 있죠. 이렇게 현재의 ‘여성’이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축적된 문화적 차별과 인정이 겹쳐진 개념이라는 사실이 만들어내는 난점이 있는 것 같아요.
김강리
우리가 박근혜 탄핵 집회 때 페미존을 만들면서 여성 혐오 발언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박근혜처럼 굉장히 남성 중심적인 사회 안에서 여성의 롤을 잘 수행하고 심지어 대통령까지 한 사람도 그 구조 안에서 성차별을 당한다면 우리는 그때도 달려나가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그러한 맥락 안에서 저는 트랜스 여성이 겪는 경험 또한 같이 이야기해야 한다고 느껴요. 그러니까 나와 동질적이거나 나와 뜻이 맞는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게 그냥 부당하기 때문에 맞서야 한다는 것. 저 사람과 내가 다른 데 같이 갈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는 데 저는 너무 많은 시간을 우리가 써버렸다고 느끼기도 해요.
장혜영
남성의 말하기가 여성의 말하기를 잡아먹는 유구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남성은 여성 문제에 있어서는 여성이 말하도록 좀 입 다물도록 해’ 같은 분위기가 있죠. 그런데 이런 분위기가 역설적으로 이 논바이너리의 문제 앞에서는 다양한 ‘여성’들의 말하기를 입막음하는 기제가 되기도 해요. 트랜스젠더 여성의 말하기를 ‘남자는 입 다물어’라는 방식으로 부정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죠.
김강리
저는 엘렌 식수 이야기를 조금 해 보고 싶은데요. 엘렌 식수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고 동시에 ‘여성적 글쓰기’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많은 글을 남긴 사람입니다. 엘렌 식수는 “이제 더 이상 과거가 미래를 만들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과거의 결과가 아직도 여기에 있다. 그것을 나는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의 결과들을 반복함으로써 그것을 공고히 하는 것, 그것을 나는 거부한다. 과거의 결과들에 운명과 동등한 종신성을 부여하기를 거부한다. 미래를 앞당기기, 이것이야 말로 급박한 일이다.”라는 말을 했어요.
남성 중심적인 언어를, 들뢰즈식으로 이야기하면 ‘탈코드화’를 시킨 거죠. 여성적 말하기가 공론장 안에 들어와서 남성 중심적 언어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백래시가 왔다면 우리는 그 다음으로 나아가야 해요. ‘그런데 왜 전진하지 않고 뒤를 돌아보고 싸우고 있지?’라는 생각을 사실 저는 최근에 많이 했어요. (여성적 말하기를 확장하는 대신) 왜 다시 남성과 적대 하는 방식으로 프레임을 구성할까. 정치 전략적으로도 이것은 굉장히 끌려다니는 포지션이라고 생각했어요.
장혜영
그런데 사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얘기들이 결코 쉽지만은 않은 얘기잖아요. 여러 추상적 개념들을 다루기 위해서는 공부도 필요하고 대화도 필요하고 머리를 싸매며 이 모호한 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지난한 노력의 시간이 필요한데 … 이런 노력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 자체가 교조적이라는 비판도 있고, 때로는 그 비판이 비난을 넘어 반지성주의적 거부로 이어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장태린
하지만 법안을 한번도 보지 않고 와서 차별금지법 반대한다고 하는 건 너무 슬픈데요..
김강리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차별금지법 통과되면 여대 없어질 거라고 저에게 뭐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그 사람들의 말을 하나하나 반박하며 ‘법안 직접 읽어보세요. 직접 읽고 판단하세요.’ 그랬더니 나중에 몇 사람은 ‘감사합니다’라는 댓글을 달고 가는 거예요.
반지성주의의 맥락 속에서 굉장히 시원하게 말하는 것을 강렬하게 원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순간에는 정말 더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거든요. 저는 그걸 기다릴 필요가 조금 있지 않나 싶어요. 근데 사실 기다리기에는 너무 많은 폭력들이 산재해 있죠. 하지만 그들도 모르고 살고 싶어서 페미니스트가 되지는 않았을 거잖아요.
장혜영
무지는 특권이죠. 혐오는 너무 쉽고요. 당연스레 여성으로 분류되며 실존을 인정받아온 사람들이 “트랜스젠더는 정신병이야”라고 쉽게 말하는 건 특권에 기반한 무지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순간 “여성에게 특권이 어디 있냐” “여성은 무조건 약자다”라는 목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김강리
우리가 덕질할 때 ‘한 먹지 마세요’ 라는 말을 많이 쓰잖아요. 운동할 때도 한 먹지 않는 것, 이거 너무 중요해요. 내가 가장 피해자고 내가 가장 불쌍하고… 이렇게 생각하면 구체적으로 그 사안을 들여다볼 수가 없어요. 물론 우리가 이성이 아닌 정동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 또한 페미니스트가 만들어온 논의였지만, 그것에서 벗어나서 진실과 사실이 다르다는 것, 사건을 어떻게 조직화해 나갈 건지는 또 다른 영역인데, 원한의 감정이 그것을 굉장히 해칠 때가 있거든요.
최근 향연 님이라는 네임드 트위터리안이 ‘래디컬 페미니스트’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신 적이 있었죠. 한편에는 그 사람들의 한을 풀어줄 향연 님도 필요한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거기에 다 가서 “우리도 힘들었어” 이럴 필요는 없는 거예요. 저는 “트랜스 앨라이와 함께하는 트랜스 해방”이라는 단체가 만들어져야 된다고 얘기를 하는데요.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체처럼, 그 중간자 역할을 해 줄 사람이 필요하고, 당사자들은 당사자로서 계속 이야기를 전진시켜 나갈 어떤 물리적 혹은 관념적 장소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어요.
해이
저희 학교에 사실 너무 큰일이 있었잖아요. 트랜스 당사자와 트랜스 앨라이한테 너무 큰 트라우마로 남은 일이 있었고, 그분들은 아직도 그 일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는 상태인데. 그 상황에서 동아리 회원들에게 우리 좀 더 많은 일들을 해보자, 밖이랑 좀 교류를 해보자고 쉽게 말할 수가 없어요.
제 개인적인 신념과 별개로 동아리 구성원들의 건강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그걸 지키는 게 우선이기 때문에. 하지만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반대 쪽 사람들의 한도 풀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안 그러면 정말 서로 싸우고 대화를 포기해 버리게 되니까요. 저도 힘들었고 제 동료들도 힘들어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기력이 남아 있는 사람이 그런 시도를 해보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집회 때도 기말고사 기간이었거든요. 시험 공부도 해야 되고 집회도 나가야 되고 그래서 친구들이 서로 힘들어하고 있을 때 동아리 회원 중에 하나가 그런 말을 했어요. 우리가 연대를 할 때 한 명이 힘들면 다른 사람이 나가고, 그 사람이 지치면 또 다른 사람이 나가고 그렇게 서로 순환하면서 하는 거다. 그렇게 스스로를 잘 돌보면서 외부와도 소통하는 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이라는 그 얘기가 너무 좋았어요.
김강리
최근에 전장연 박경석 활동가가 동덕여대 혜화 캠퍼스를 ‘진지’라고 표현해 주신 게 정말 좋았는데요. 우리의 진지를 만들어야 된다고 늘 느껴요. 우리의 진지를 잘 가꾸고 이 안에서 서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서로 위로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 다음에 나가는 게 나를 위해서도 옆 사람을 위해서도 좋다고 느꼈어요.
저는 과거에 이 진지를 잘 지키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이 이야기를 더 하고 있기도 해요. 저는 사실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그닥 타격을 받는 종류의 타입이 아니에요. “아니. 내가 맞아” 이런 타입이에요. (해이 : 혹시 MBTI가 intp나 intj신가요?) 저 intp예요. (웃음) 그래서 장혜영 의원이 F라는 소리를 듣고 너무 걱정을 많이 했어요. F에게 그렇게 말하면 상처를 받을 텐데..!
제가 여성학동아리 대표도 하고 성인권위원회 위원장도 했던 건 다른 게 아니라 제가 타격을 덜 받아서였어요. 그러다 보니까 함께하는 친구들이 얼마나 힘든지를 많이 살피지 않았던 거예요. 나는 괜찮으니까. 친구들이 힘들다고 했을 때 그 얘기를 더 들으러 갔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어 그래’라고 해버린 것에 대한 후회가 있어요. 그래서 요즘엔 이 진지를 어떻게 더 잘 구축할지 생각하고 있어요. 나와 함께하는 친구들이 나가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돌아올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어떻게 만들지.
해이
그래서 공감 능력에 대해 진짜 많이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저는 공감 능력이 거의 없어요. 친구들을 보면 타자의 아픔에 공감을 하고 자기의 일처럼 받아들임으로써 그런 당사자성을 확장시켜 나가고 그게 또 운동이 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란 말이에요. 근데 저는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이니까 되게 경탄을 해요.
우리의 사회 구성원 중에 저처럼 타인의 아픔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잖아요. 어떻게 그 사람을 운동할 수 있게 만들까,에 대한 생각을 되게 많이 해요. 어떻게 하면 당사자성의 확장에서 비롯되지 않는 다른 수단을 통해서, 내가 다른 집단이나 어떤 소수자에 대한 의식을 키우고 그 사람들을 위한 앨라이 선언을 하거나 같이 참여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데 아직까지 저는 결론을 못 내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