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정x 격주간 아티클 "망원정담" #1 망원정x 격주간 아티클 "망원정담" #1 망원정담 첫 번째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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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정x 회원 여러분, 반갑습니다. 망원정x의 격주간 아티클 <망원정담>의 첫 화로 인사드립니다.
<망원정담>은 지금 우리가 얘기나눠야 할 정치적 대화의 주제를 선정하고, 그에 어울리는 사람과 함께 대화를 나눈 뒤, 내용을 갈무리해 이메일 아티클로 보내드리는 기획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더욱 풍부한 정치적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며, 망원정담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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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손님
망원정x 사무국을 함께 이끌어가고 있는 서정진 사무국장과 장태린 매니저,
그리고 장혜영 대표.
이들은 어떤 인연으로, 그리고 어떤 연유로 망원정x에서 함께하고 있을까요?
세 사무국 멤버가 바라고 바라는 정치의 모습에 대해 함께 들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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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과 자기소개
장혜영 안녕하세요. 망원정x 대표 장혜영입니다. 그러면 달콤한 바나나 티라미수와 함께 망원정 터 앞에 자리잡은 대안 공간에서 첫 번째 망원정담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망원정담의 첫 번째 주인공은 저와 함께 망원정x를 만들어가고 있는 망원정x 사무국의 두 분입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서정진 저는 망원정x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서정진입니다.
장태린 저는 망원정x 매니저를 맡고 있는 장태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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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정 터 앞에 위치한 대안공간 'space soda2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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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질문. '망원정담' 첫 인터뷰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어떤 기분인가요? 어떤 마음으로 수락하게 되었나요?
장혜영 진짜 간단한 소개네요. (웃음) 우리가 ‘망원정담’ 기획은 같이 했지만, 막상 제가 첫 번째 인터뷰 주인공으로 사무국 두 분을 하자는 얘기를 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서정진 굳이 사무국이 첫번째가 아니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사무국은 어떻게 보면 뒤에서 일하는 사람이니까, 제일 처음에는 저희 얘기보다 망원정x가 하고자 하는 바와 궤를 같이 하는 좀 더 유명한 분들이 나오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러면 사람들이 좀더 쉽게 이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서 의아했죠.
장태린 저는 사실 인터뷰이보다는 인터뷰어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일에 익숙하거든요. 기획하고, 답변을 끌어내고 이런 일에는 익숙한데 제가 얘기를 하려니까… 이거 되게 어려운 일이구나 싶었죠.
장혜영 어떤 작업을 했었는지 이 기회를 빌려서 조금 설명을 해줘도 좋지 않을까요.
장태린 저는 르포를 쓰는 기록자로 활동을 했는데, 가장 최근에는 세월호 10주기를 맞아서 생존자와 세월호 활동가들을 인터뷰한 단행본 <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 를 발간했어요. 그리고 ‘싸우는 여자들 기록팀’이라는 이름으로 전국 방방곡곡의 투쟁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쓰는 작업을 했습니다.
장혜영 어색하기도 하고 다른 분들이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첫 인터뷰를 한번 해보자고 맘먹게 된 이유는 뭔가요?
서정진 독자들이 망원정x가 어떤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궁금하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가 왜 장혜영과 계속 함께하려고 하는가. 그런 것들에 대해서 제 생각을 나누어보면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하는 데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장태린 저희의 배경, 활동의 영역, 가지고 있는 정체성 이런 것들이 흔히 생각하는 ‘정치하는 사람’의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우리가 왜 ‘정치’를 같이 하고 있는지 이야기하면서 무엇이든 정치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서요.
장혜영 의미심장한 얘기네요. ‘망원정’이라는 이름에는 ‘우리가 바라고 바라는 정치’라는 뜻이 담겨있잖아요. 저는 지금의 정치가 가지고 있는 큰 문제점이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인간 일반으로서의 사람도 그렇고 스태프로서의 사람도 그렇죠. 귀한 사람은 멀리 따로 있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은 제대로 돌아보지 않아요. 그래서 망원정x의 시작에서는 바로 곁의 사람들과 진심으로 함께 해나가는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망원정담의 시작을 두 분과 같이 하고 싶었던 이유예요. 용기를 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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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질문. 우리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장혜영
그럼 이제 여러분이 누구일지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서 좀 더 얘기를 들어가 볼까요. 사실은 저희가 인연이 꽤 됐잖아요. 어쩌다 여기까지 오시게 됐나요?
장태린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저는 대학에서 열심히 학생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치 활동을 하는 친구들도 많이 만났죠. 어느 날 정의당원인 친구한테 연락이 온 거예요. “너 장혜영 감독이라고 알아?” 그래서, “당연히 알지. 나 <어른이 되면> 도 봤는데.” 그런데 그 분이 정의당에 입당했다는 거예요.
새롭다. 뭐지? 정치를 하시려는 건가? 라고 생각했는데 비례대표 경선에 출마를 하신다는 거예요. 근데 또 다른 친구가 “너랑 잘 맞을 것 같은데 한번 같이 만나볼래?” 해서 같이 이야기도 하고… 홍대 모처의 술집에서 같이 술을 마시다가 입당 원서를 쓰게 된 거죠.
서정진
당에 큰 공헌을 하셨네요. (웃음)
장태린 그렇게 이런저런 인연의 연속으로, 21대 국회 정의당 장혜영 의원실 개원 멤버로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장혜영 의원실 생활은 어땠어요?
장태린 저는 대학에서 인권운동을 했고 어쨌든 세상을 좀 더 나은 쪽으로 바꾸고 싶은 꿈이 있었기 때문에 막연하게 “나중에 정치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있긴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는 상태였어요. 인맥이랄 것도 없는데다 탈정치화 흐름 때문에 정치가 20대들한테 되게 터부시되는 측면도 있었어요. 특히 활동가에게는 “너 학생운동 하다가 나중에 정치하려고 하냐?” 이런 비판이 늘 따라다닌단 말이죠. 그래서 정치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는 게 되게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막상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이 왔을 때 내가 꿈꾸던 기회니까 이왕이면 열심히 잘 해보자는 마음을 먹고 국회에 들어가기로 했죠.
그렇게 대학을 다니다가 갑자기 어린 나이에 국회라는 곳에 들어가고 나니 스스로 굉장히 이질적인 존재라고 느꼈어요. 당장 스타일링부터 막 머리 탈색하고 타투 하고 다니고… 다들 낯설게 보았죠. 국회에는 300개의 의원실이 있는데 장혜영 의원실은 그 중에서 가장 특이한 곳이었어요. 의원실 평균 연령도 낮고요. (평균 30대였다.) 저희가 청년 여성 보좌진들이 많았는데 임기초에 의원님이랑 같이 다니면 국회 직원들이 의원님도 보좌진인 줄 알고 출입증 보여달라고 하고… 그런 에피소드들이 많아요. 이런 곳에서 첫 정치 활동과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이 저에게는 굉장히 뜻깊은 일이었기 때문에 계속 이 마음을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장혜영 정진님과의 인연도 참 드라마틱한데. 독자 여러분께 의원실 시스템을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면 한마디로 의원실은 10명의 팀이에요. 의원이 있고 9명의 보좌진이 있죠. 그 중 주로 수행과 일정을 담당하는 보좌진이 한 명 있어요. 수행은 말 그대로 의원과 물리적으로 함께 다니면서 일정을 곁에서 보좌하는 역할이죠. 의원과 가장 많은 시간을 밀접하게 보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처음부터 여성 수행 보좌진을 원했어요. 하지만 일단 여성 중에서 수행 비서관으로 선뜻 나서는 분들이 많이 안 계셨죠. 그렇게 사람 구하는 데 애를 먹다가 건너 건너 정진님을 소개받았어요
서정진 어느 날 밤에 친구가 전화가 와서 혹시 국회에서 수행비서 일을 할 생각이 있는지 물어봤어요. 평소에 ‘나는 뭘 잘하나’, ‘나는 무슨 일을 하면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할 때 뭔가 의미 있고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을 서포트하는 일을 하면 좋겠다, 특히 열심히 일하는 여성을 옆에서 도와주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나는 운전도 할 수 있고 옆에서 챙겨주는 일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예를 들면 누군가의 수행비서라든가. 이렇게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런 제안이 와서 신기하다고 생각했죠.
상대가 장혜영이라는 이름의 정의당 국회의원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름이 낯설지 않았어요. 장애인 동생을 시설에서 데리고 나와서 함께 살면서 그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만든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정의당에서 정치를 시작했다는 얘기를 몇 달 전에 들은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는 젊은이가 그런 생각을 하다니 기특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부모님을 돌봄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돌봄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자기 시간이나 삶을 포기해야 하는 일인지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부모님도 아니고 장애가 있는 동생을 돌볼 결심을 하다니 쉽지 않을텐데. 부모님은 사실 어느정도 시한이 정해져 있는 돌봄이지만 동생을 돌본다는 것은 평생을 가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가슴이 먹먹해졌거든요.
그런 사람이라면 같이 일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면접을 보러 갔죠. 면접에서 만난 의원님은 면접 보러 가기 전에 영화 <어른이 되면>이나 강연 영상들에서 받았던 느낌이랑 좀 달랐어요. 똑부러진 사람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너무 상냥하고 친근한 사람이더라구요. 면접 끝나고 나와서 국회 안을 거닐며 여기서 저 분과 같이 일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시작된 인연으로 같이 일하는 3년간 여기서 일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어요. 사실 제가 수행이라는 일에 익숙하지 않고 국회는 더더욱 익숙하지 않고 정치에 크게 관심이 있었던 사람도 아니었는데, 아까 태린 매니저님이 얘기하신 것처럼 장혜영 의원실은 국회에서도 좀 특별한 공간이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잘 적응하고 녹아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일은 많았지만 진짜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도 있었어요. ‘팀 장혜영’의 일원인 것이 자랑스러운 시간들이었죠.
장혜영 근데 힘들기도 많이 힘드셨잖아요. 일이 많아서..
서정진 네 일은 많았죠 (웃음). 그런데 저한테는 되게 잘 맞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수행 일이 개인적인 시간이 꼭 담보되어야 하거나 돌보아야 할 가정이 있는 사람이 하기는 쉽지 않은 직업인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근무시간도 길고 휴일에 갑자기 일정이 생길 때도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나는 이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장혜영 이런 속엣얘기를 들으니까 되게 신선하네요.
서정진 그러게요. 이런 얘기는 처음 하네요.
장혜영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또 이렇게 막상 판을 깔아놓고 얘기를 청해 들으니까 되게 느낌이 다르네요. 참, 의원실 인적구성과 연령대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저는 87년생이고요.
서정진 저는 71년생입니다.
장태린 저는 98년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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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질문. 아무리 힘들어도
더 나은 정치를 위해 계속 노력하게 만드는 힘은 무엇인가
장혜영 장혜영 의원실은 확실히 인적구성 자체로 다양성으로 가득한 곳이었죠. 우리가 의원실 동료로 시작해서 온갖 우여곡절을 거쳐왔잖아요. 좋았던 순간도 있지만 의원이 일 욕심이 많아서 그만큼 고되기도 했고 다루는 의제가 약자나 소수자 관한 의제가 많은 만큼 역설적으로 온갖 공격을 받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한번 힘내보자고 마음먹게 되는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장태린 정치에서 가장 큰 이벤트는 역시 선거잖아요. 어쩌다보니 저는 대통령 선거, 지방선거, 국회의원 선거에 실무자로서 참여를 했는데 후보라는 존재는 실무자들의 말을 굉장히 듣지 않습니다! 후보는 후보대로의 전략과 생각이 있지만 실무진과의 생각은 다를 때가 많아요. 게다가 선거 기간은 굉장히 전쟁 같아서 충분히 대화를 나눌 시간도 없고 체력적으로 피곤하니까 다들 날카로워져 있거든요.
그러다보면 선거 도중에는 “내가 이걸 다시 하나 봐라…” 를 한 백번쯤 생각하게 돼요. 그런데 선거 마지막 날이 되면 모든 것을 동원한 피날레 유세가 있죠. 그리고 후보가 마지막 발언을 하잖아요. 그걸 듣고 있으면 모든 피로와 고생이 싹 날아가는 느낌이 들어요. 이 당이, 이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얘기가 있다. 그래서 내가 여기를 못 떠나는 거지 하는 마음이 생겨요.
장혜영
지난 대통령 선거 마지막 유세 때 지지자로서 마이크를 잡았었죠?
장태린 네. 내가 엄청난 달변가, 큰 스피커, 유명하고 대단한 사람이 아님에도 대통령 선거의 마지막 날 공식 유세에서 지지자로서 마이크를 잡고 말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제겐 굉장히 큰 의미였어요. 제가 속한 정당이 소수자를 대변한다는 것을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정치적 공간을 내어줌으로서 직접 보여준 것이니까요.
장혜영 태린 님을 처음 소개받았을 때, “숙명여대에서 되게 엄청 열심히 싸우는 페미니스트 활동가다”라고 들었어요. 그때가 딱 숙명여대에서 학생들이 트랜스젠더 입학생을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배척하는 이슈가 뜨거웠는데, 태린 님은 거기에 맞서 그것이 트랜스젠더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라는 싸움을 치열하게 하고 있었어요. 엄청 힘들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이 사람에게 뭔가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면서 궁금했어요. 무엇이 이 사람을 이렇게 뜨겁게 싸우도록 만드는 것일까?
장태린 운동을 시작한 건… 친구를 잘못 만났기 때문입니다.
장혜영 만고의 진리죠. 친구 따라 강남 간다..
장태린 제가 입학한 학과, 같은 학번, 같은 동아리에 성향과 관심사가 비슷한 친구들이 많았고 작당 모의를 하기 굉장히 좋은 환경이었어요. 지금까지도 다 제일 소중한 친구들이에요.
무언가를 하는 힘이 저는 크게 두 가지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데요. 일단 제가 화가 많고 성격이 급합니다. 했던 일의 대부분은 “아무도 이 얘기를 안 들어줘? 그럼 내가 해야지” 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거였어요. 그리고 그렇게 활동을 하다 보면 사람들을 만나잖아요. 사람을 만나는 과정이 제겐 세상을 넓히는 과정이었어요. 다양한 사람들을 얼굴 대 얼굴로 만나면 그 감각을 잊을 수 없게 되는 것 같아요. ‘세상에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많네. 안타깝다.’ 이게 아니라, 왜 이 사람들이 힘든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구조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만들어 내야 되는지 고민이 확장되는 거죠. 이렇게 구체적인 얼굴을 만남으로써 내가 보는 세상이 한 발짝 넓어지는 경험을 하면 결코 그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게 돼요.
장혜영 사실 운동 구력으로 따지면 정진 님도 만만치 않으세요. 과거에 엄청 치열한 투쟁의 한복판에 있으셨죠.
서정진 제가 90학번인데 그때는 학생운동이 한참 잘 나가던 그런 시기였어요. 그때는 대학에 가서 학교에 잘 나가면 자연스럽게 운동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그게 대세였다고 할까. 입시공부만 하다가 대학에 가서 처음으로 세상에 대해 알게 되고 배우게 됐으니까요. 저만 해도 고등학교 때까지는 모르던 것들을 대학 가서 알게 되었는데 정말 충격적인 것들이 많았거든요. 예를 들면 4.3 항쟁 같은 걸 저는 전혀 모르고 살았었어요. 우리나라 국민이 이렇게 죽어갔는데 내가 그걸 전혀 몰랐다는 사실이 충격이었죠. 5.18 민주화 운동도 마찬가지예요. 80년이면 제가 10살 때인데 폭동으로 알고 있었지 실제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건지 전혀 몰랐거든요.
그런 사실들을 알게 되면서 ‘아, 이 나라가 이상하구나.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구나’ 그냥 그런 마음으로 운동을 했던 거죠. 공부를 해서 무슨 철학적 기반이나 이론적인 바탕을 갖추고 뭘 하고 이런 게 아니라요. 저 같은 경우는 특히 그랬던 것 같아요. 이렇게 뭔가 잘못됐는데 가만두는 게 이상한 것 아닌가. 이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데. 그러면서 집회도 나가고 하다 보니까 총학생회 활동까지 하게 됐죠.
뭔가 열심히 하면 세상이 그래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더 이상하게 변하는 건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대학생활을 했죠. 그런데 졸업을 하고 보니 세상이 뭔가 바뀌는 것 같긴 하지만 제 삶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되게 많이 들었어요. 계속 운동을 하고 간부로 일했던 분들은 나중에 정치권에 진출을 하고 국회의원이 되기도 했는데 그런 일들이 우리 사회에는 분명 영향을 줬겠지만, 그래서 내 삶이 바뀌었나 하면 아닌 것 같았어요. 다른 한편으로 핑계일 수도 있지만, 제가 먹고사는 문제는 제가 온전히 책임져야 하고 가족을 부양해야하고 그러다보니 이 한정된 시간과 노력을 운동에 쏟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렇게 운동에서 멀어졌지만 살아오면서 계속 마음의 부채로 남아 있었죠. 그런 의미에서 장혜영의원실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음의 부채를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는 기회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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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질문. 내가 망원정x에 함께하는 이유,
여기에서 함께 해나가고 싶은 일들
장혜영 그렇게 우리가 함께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선거를 치렀지만, 안타깝게도 이제 22대 국회에는 장혜영 의원실은 없죠. 낙선과 임기 종료 이후의 시간을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데 저도 시간이 좀 걸렸는데 두 분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장혜영 의원실 없는 22대 국회의 시간을 어떻게 마주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망원정x를 같이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장태린 사실 저는 국회에서 일하면서 ‘여의도 정치’를 먼저 배우긴 했지만, 정치라는 게 여의도에만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삶의 모든 공간에 정치가 있는 것이고… 총선 직후 녹색정의당이 원외가 되었다는 소식이 공유 됐을 때, 민주노총의 김진숙 지도위원께서 “당신들이 만나야 할 유가족과 산재 피해자들과 약한 사람들은 모두 길에 있다. 그러니까 당신들은 그 길에 좀 더 가까워진 것이다.” 이런 취지의 말씀을 해 주셨었거든요.
“한 사람이 복직하는 데 37년이 걸리기도 하고, 억울함을 끝내 못 풀고 이승을 떠나는 이들도 많은 나라예요. 정의란 합법의 지붕 아래보다 바람 거센 광야에 있을 때가 많습디다. 장애인들은, 성소수자들은, 여성들은, 노동자들은, 세월호는, 이태원은, 산재 피해 유가족들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어요. 언제나.” - 장혜영 (전) 의원의 낙선인사에 대한 김진숙 지도위원의 답변.
결국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간 느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좀 더 고민할 시간이 생겼다는 것. 그래서 망원정x에 같이 해야겠다고 생각을 한 것도 우리의 일상에서부터 뭔가를 차곡차곡 다시 쌓아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정치라고 하면 국회의사당만 딱 떠올리지만 사실은 그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에서 조금씩 변화를 모색하는 것, 고민을 해 나가는 것, 그것 또한 정치라는 얘기를 더 넓게 전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겠다.
서정진 저는 두 가지 정도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장혜영의 정치는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제일 컸어요. 왜냐하면 제가 국회에서 3년 정도 같이 일을 했는데, ‘세상에 이런 정치인이 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진짜 잘한다고 생각했어요. 좋은 뜻을 가지고 정치를 시작하고 일을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 중에서 참 잘한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가 않거든요. 특히 진보 정치판에서는. 그런데 옆에서 봤을 때 우리 의원님은 참 잘하는구나, 근데 이렇게 잘하는 사람이 계속 정치를 할 수 있으면 좀 더 내가 원하는 세상이 빨리 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삶을 살 수 있지 않나,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지 않나 하는 마음에 장혜영의 정치가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거기에 뭔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라는 게 이제 제일 큰 이유였고 두 번째는 내 삶과 연결되지 않은 채 그냥 도와주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망원정x의 활동이 내 삶과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이제 어느새 50대 중반인데,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 건가, 이게 내가 하는 일이랑 어떻게 연결이 될 건가 하는 것들을 좀 많이 고민했어요.
그간 저는 제가 정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정치하는 사람의 서포터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하루는 친구가 저한테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것도 정치야’라고 했을 때 ‘아, 그러네’ 싶었어요. 정치를 한다고 하면 후보로 선거 출마하고 플레이어로 뛰는 것만 생각했었는데 그 뿐만 아니라 뭔가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같이 노력하는 게 다 정치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면 내가 망원정x에서 이 일을 계속하는 게 결국은 앞으로 내가 원하는 내 삶과 연결이 되겠다고 느꼈죠.
나이가 나이인지라 노후 걱정이 많이 되거든요. 제 주변에 의외로 50대 1인 가구가 많아요. 이 사람들이 늙고 아프면 어떻게 해야 되나, 그리고 어떻게 죽음을 준비하고 맞이해야 되나 하는 걱정이 많이 있어요. 개인적인 고민이지만 이런 개인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은 굉장히 많을 것이기 때문에, 함께 고민하면 좀 더 인간답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나. 이런 것도 망원정x에서 정치적으로 같이 고민하고 싶어요.
장태린 지금 사회가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콘텐츠와 글과 말은 너무나 많지만, ‘집단적 독백’의 느낌이 강해요. 망원정x가 대화의 근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것도 정치다!”라고 얘기해보고 싶어요. 각자의 관심사가 있을 거잖아요. 예를 들면 저는 홍대 인디 음악, 홍대 문화를 좋아하거든요.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까 홍대 라이브 클럽들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고, 그 음악가들의 노동권은 어떻게 지켜지고 있고, 왜 홍대 상권이 죽어가고 있고… 이런 고민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단 말이에요. 모든 게 정치와 연결될 수밖에 없어요. 모두가 거창한 뭔가를 할 필요는 없는 거예요. 취미 생활을 하면서, 그 안에서도 뭔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는 거죠. 그런 포인트들을 제공해 드리는 것도 망원정x가 할 수 있는 역할 아닐까요?
장혜영 맞아요. 진짜 좋은 대화를 나누고 나면 엄청 마음이 가득 차는 기분이 되잖아요. 설령 의견이 다르다는 걸 확인하더라도 큰 만족감을 가지고 집에 돌아가고, 그때 나눴던 대화들이 되게 길게 생각이 나고… 그러면서 자기 마음 안에서 어딘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변화하기도 하고요. 그런 순간들을 만드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다는 생각을 저도 많이 해요.
서정진 너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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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질문. 망원정x에
함께해주시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장혜영 사실 두 분은 엄청 능력자시죠. 그 근거로 지난 10월에 하나만 하기도 힘든 사무실 이사와 페어웰 파티를 2주 만에 잘 치러내는 기염을 토하셨는데요.
서정진 해냈다.
장태린 이게 되네.
장혜영 이 자리를 빌어서 그때 마음을 모아주셨던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나눠주세요. 혹은 공간 이사와 페어웰파티를 준비하던 마음을 들려주셔도 좋고요.
장태린 슬프게 느껴지지 않았으면 했어요. 떠나는 게 아니라는 느낌을 드리고 싶었거든요. 오신 분들도 다 즐기고 가신 느낌이어서 저는 그게 되게 좋았고 한편으로 궁금했어요. 사실 실무자로서 후원자나 지지자를 만날 일은 잘 없단 말이죠. 누군가 우리를 지지하기는 하지만 그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인지, 왜 그 사람은 장혜영을 지지하는지, 어떤 정치적 대화를 하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는 기회가 없는데 행사들을 계기로 ‘이 사람들 정말 존재하는구나!’ 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되게 좋았고요.
이게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이 필요한 이유겠다 싶기도 했어요. 사람이 어쨌든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면, 온라인에서는 엄청 싸우다가도 막상 대면하면 생각보다 그렇게 나쁜 말 못하잖아요. 원래도 애정이 있었던 사이라면 실제로 만날 때 그 애정이 더 깊어지는 느낌이 있고요. 그래서 앞으로도 망원정x의 회원님들의 얼굴을 더 자주 뵙고 싶어요.
장혜영 정진 님은 이사 끝나고 다리 부상을 당하셨죠…
서정진 하지만 이제 다 나았습니다. (웃음) 2주 만에 공간을 정리한다는 게 쉽지가 않잖아요. 근데 그게 됐단 말이죠. 알맞게 딱 다음 세입자가 구해지고 물건들도 인수가 되고 공사 일정도 잘 맞아서 다행히 착착 진행이 되는 걸 보면서 ‘우리 진짜 잘 되려나 보다, 걸리는 게 없구나, 잘 되겠군’ 이런 생각을 했어요.
페어웰 파티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순간이었는데, 저희가 장혜영 애장품 경매를 했잖아요. 제가 그걸 보면서 되게 놀랐어요. 높은 가격으로 경매가 진행되는 걸 보고 너무 고마웠어요. 멀리서 발걸음해주신 분들을 보면서 진짜 많은 사람들이 응원하고 있구나, 우리가 계속 정치를 해나가길 바라고 있구나 하는 게 느껴져서 좋으면서도 한편으로 마음에 빚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파티였던 것 같아요.
장태린 사무실 정리하면서 중고 거래를 많이 하잖아요. 지역 주민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거래하러 오신 분들이 “저 장혜영 의원님 찍었어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다 지켜보고 계시는구나.
장혜영 맞아요. 진짜 감사한 자리였죠. 원래는 국회의원 장혜영의 지역사무소 공간을 망원정x의 둥지로 만들고 싶었지만 고민 끝에 방향성을 바꿨죠. 한 공간에 경험을 축적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다양한 곳에 자리잡은 사람들의 공간을 우리가 찾아가서 그날그날의 망원정x를 만들자고 말이죠. 너무 감사하게도 저희에게 이미 공간을 제안해주신 분들이 계셔서 이번주에 만나뵈러 가기로 했어요.
그리고 이번 달부터 본격적인 망원정x의 프로그램도 가동이 됩니다. 이와 관련해서 끝으로 회원님들께 전하고픈 얘기나 간단한 앞으로의 행사 예고편을 날려주시면서 마무리 인사를 해주시면 어떨까요?
장태린 일단 저는 굉장히 재미주의자입니다. 재미있어야 합니다. 특히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라면 무조건 재미가 있어야 된다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다만 재미는 대표님이 좀 약한 부분이기 때문에 잘 보완해보겠습니다. 망원정x가 여는 공간에 오실 때는 가볍게 찾아오시되 돌아가실 때는 “오길 잘했네!” 라는 마음을 안고 가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재밌는 얘기든, 도움이 되는 유익한 얘기든, 고민이든 하나씩은 가져가실 수 있는 행사들로 만들어보고 싶어요. 재미를 1순위로 여러분이 시간과 마음을 내어 주신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으실 만한 행사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많이 자주 뵀으면 좋겠어요.
서정진 저희가 지금 기획하고 있는 것 중에 제일 가까운 일정이 11월 27일 저녁에 예정된 오픈 마이크인데요. 진지한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기획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없던 코너이니만큼 어떻게 채워질까라는 기대도 있고, 뭔가 새로운 정치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설렘도 있습니다. 의미있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잘 준비하겠습니다.
장혜영 맞아요. 저희의 망원정 첫 오픈 마이크의 주제는 “윤석열 또는 이 세상을 어떻게 할 것인가” 입니다. 첫 행사인 만큼 클로즈드베타로 일부러 큰 공간을 안 잡고 작게 모여서 도란도란 얘기를 듣고 나눌 수 있는 곳으로 잡았으니 부담갖지 마시고 오시면 좋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망원정x의 아티클 <망원정담> 시리즈의 첫 주인공으로 망원정x 사무국 두 분과 함께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우리가 바라고 바라는 정치의 풍경을 서정진 사무국장님과 장태린 매니저님 두 분, 그리고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과 함께 잘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이번 편 재밌게 보셨기를 바라며 저희는 다음 아티클로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같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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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정 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망원정x 사무국 멤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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