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영
구체적인 막막함을 같이 해소해 나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결속이랄까, 유대감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늘 말씀을 듣다 보니 그런 것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아 너무 기쁩니다. 이 활동들을 쌓아 나가다 보면 언젠가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세상이 올 거잖아요? 여러분이 어떻게 변화된 세상을 꿈꾸고 계신지 궁금해요. ‘차제알’ 활동을 통해서 어떤 변화가 만들어질까요?
강다현
다양한 소수자가 발언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듣고 배우고 연대하는 요즘의 광장같은 순간들이 더 많이, 지속적으로 열리는 사회를 기대합니다.
요지경
누군가는 차별금지법을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말하지만 저는 오히려 다양한 스펙트럼의 삶을 보여주기 위해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소수자들은 자신을 소개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다수와는 다른 존재임을 계속 어필해 남들에게 스스로 이해시키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이 당연해진 평등 세상에서는 내가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하더라도 그게 특별하거나 이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정체성 이전에 한 명의 인간으로서 나를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우리의 다양함이 평범한 일상이 되는 사회가 제가 기대하는 차별금지법 있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예인
저는 위에서 이미 변화에 대해 언급을 했으니, 그보다는 변화된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해 말씀 드리고 싶어요. 음, 예전에 동성 커플 피부양자 소송 승소 소식을 보면서 너무 기뻤거든요. 한 발 전진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런데 한 편으로는 또 백래시가 오지 않을까 방어적인 두려움이 들기도 했어요. 뉴스를 보다 보면 기쁜 소식보다는 절망적인 소식이 많이 들려오잖아요. 그럴 때마다 무력해지기 마련인데, 그렇기에 제 태도를 다져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치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는 마음이랄까요. 내 전부를 소진하지 않으면서도, 진심으로 대할 수 있는 태도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고영유
저는 연대에 대해서 우리가 좀 더 확실하게 알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수많은 연대가 펼쳐지고 있잖아요. 민주노총의 한 활동가분이, 광장 발언에서 “나라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더라도 우리(민주노총)를 지지해 주실 건가요?” 라고 질문하셨을 때 수많은 광장의 시민들이 “네”라고 답변하신 순간을 봤을 때 감명깊었어요. 내가 지금의 주류 사회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와 연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겠구나, 라는 걸 느끼고 있어요.
장혜영
연대의 확장은 정말 중요하죠. 저도 연대의 확장이 차별금지법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가끔 차별에 대해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할 때가 있어요. 가장 어려운 강연 중 하나예요. ‘차별’ 이라는 개념어가 너무 어려우니까요. 그 때 ‘무시’라는 단어를 쓰면 어린이들이 가장 이해를 잘 해요. 어린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해본 경험들이 다 있거든요. “그렇게 무시받아서 속상할 때 ‘나 속상해’라고 말하기 쉬웠나요?” 라고 물어보면 쉽지 않았다고 답해요. 그 말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연대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차별을 받는 사람은 구조적 약자이기에 차별 상황 속에서 맞서 싸우기 힘든 상태에 처해 있죠. 그걸 조금이나마 말하기 쉬운 구조를 만들어주는 게 차별금지법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차별에 대항하기 좋은 구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알게 되는 무수한 현존하는 차별들이 있고, 그걸 알게 되면 자연스레 연대로 이어져요. 그래서 저는 법을 만들어가는 이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사실 제가 이 모임을 시작하게 된 건, 저 스스로가 힘들어서이기도 했어요. 온라인 상의 대화는 미디어의 특성상 긴 대화가 안정적으로 이어지기 어렵죠. 대화의 특정 부분만을 떼어서 완전히 다른 맥락으로 전유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니까요. 공론장으로서의 온라인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을 때, 역으로 오프라인에서 사람들을 만나보자는 결심이 들었어요. 오프라인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한 번 해 보자. 이제는 그 결심을 했던 과거의 저를 정말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 (웃음)
이렇게 소중한 변화를 만들어가고 계신 여러분은 ‘차제알’ 프로젝트를 통해 어떤 결과를 남기고 싶으신가요?
강다현
저와의 접점, 제가 할 수 있는 부분 등을 찾으려고 노력 중이에요. 소진되지 않고, 꾸준히 설득력있게 하려면 이 주제에 대한 저의 언어를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요.
그리고 남기고 싶은 것은 제대로 알고 있다는 확신이고, 개인적인 활동은 탐색 중입니다. 이건 그냥 뒤에 앉아서 혼자 막연히 해본 상상인데요. 차제알 내용이 알차기도 하고, 이 스터디 자체가 참 좋은 민주주의적 공론장인 것 같아서요. 이 스터디 프로그램을 조금 다듬어 다양한 시민들이 바른 정보를 얻고, 서로 대화할 수 있도록 자리를 열면 어떨까? 이런 것도 초단기 부트캠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답니다. 저는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주권자들이 정치와 현안을 배우고,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자리들이 문턱 낮고 다양하게 기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요.
요지경
차별금지법을 보다 널리 알리기 위해서 쉬운 말로 풀어쓴 책자를 하나 만들어 배포하고 싶습니다. 마침, 차제알에서도 다른 참여자분께서 어린이에게 어떻게 차별금지법에 대해 설명해야하는지에 대해 OT 질문으로 남겨 주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질문이 나왔을 때 정말 반가웠어요. 예전에 한 번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쉽게 풀어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읽어보았는데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단어로 딱딱할 것 같은 규정을 녹여낸 작업물이 굉장히 인상 깊었거든요. 법률적으로 적확한 언어를 사용하여 규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보다 쉽고 친근하게 설명해 주는 배려가 모두를 소외시키지 않겠다는 차별금지법의 의의와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예인
설득의 도구로 잘 사용될 수 있게끔 좋은 결과물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해요. 사실 제 주변에도 트랜스젠더를 혐오하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만약 결과물이 나오면 그걸 제가 개인적으로 SNS에 홍보를 할 것 같은데요. 사실 그것부터가 저에게는 모험이에요. 두렵기도 해요. 하지만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분리되어서 살아갈 수는 없잖아요.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첫 단계가 ‘차제알’ 프로젝트라고 생각해요.
고영유
저는 혐오하는 사람의 측면에서 차별금지법을 바라보는 시도를 해 봤어요. 그 사람들이 차별금지법에 대해 잘 몰라서 무지에 의한 공포와 두려움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에게 조금 더 친절하게 다가갈 수 있는 교보재로서 ‘차제알’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장혜영
맞아요. 그래서 저는 이걸 잘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계속 버전업을 해 나가면서 차별금지법 위키피디아 같은 걸로 발전해 나갔으면 좋겠다는 원대한 꿈이 있습니다.
김예인
약자들이 항상 설명을 요구받는 경우가 많잖아요. 거기서부터 기울어져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개인이 계속 공격을 받다가 참지 못해 무력을 쓰면 그건 또 폭력이 되고요. 집단의 이미지를 망치지 않으려고 개개인이 너무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걸 보면서 마음이 아프기도 해요. 그런 개개인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장혜영
저도 차별금지법을 발의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설득이 되는 사람들은 많이 만나보지 못한 것 같아요. 열린 태도로 대화를 나눈다기보다 태도는 정해져 있지만 “니가 이 까다로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는지 한번 볼게” 라는 태도가 훨씬 많았어요.
하지만 생각이 바뀌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어요. 어떻게 바뀌었는지 물어보면 결국 스스로가 스스로를 설득한 거예요. 언젠가 어떤 계기로 한번쯤은 ‘내가 갖고 있던 생각이 정말 옳을까?’ 하고 돌아볼 때, 그때 언젠가 들었던 다른 이야기를 곱씹어보면서 변화를 맞이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우리가 하는 작업도 그런 순간에 돌이켜볼 수 있는 것이 되기를 바래요. 어쩌면 우리의 작업이 하나의 예술 작품일 수도 있는 거죠. 예술은 사람들의 마음 속으로 걸어 들어가서 다른 세계를 보여주잖아요.
고영유
사실 집안에서 예술 전공을 반대하셨었거든요. 제가 어떤 대학에 면접을 보러 갔을 때, 한 교수님께서 “그렇다면 너는 예술가로서 그 반대 의견을 어떻게 설득할 것이냐”는 질문을 하셨어요. 저는 “예술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일상에서 접하는 모든 것들이 예술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직면하게끔 하는 것이다” 라고 답변을 했어요. 저희의 결과물도 그런 것이 아닐까요. 차별에 대해 무지하던 사람들에게, 차별에 대해 직면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이 될 것이라 생각해요.
장혜영
여러분 같은 마음으로 같이 해 주시는 분들이 계신 이상 ‘차제알’이 잘 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아직 스터디 초기 단계에 있습니다만, 차제알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나서 차별금지법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김예인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만큼 삼권분립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는 부분이었어요. 다들 차별금지법의 악용에 대해 우려가 크시잖아요. 법안이라는 게 실제로 시행이 되면 현실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요. 하지만 악용될 여지가 있다고 해서 법안 자체를 통과시키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입법에서 멈출 게 아니라 사법, 행정 영역에서도 잘 적용될 수 있도록 우리가 계속 감시해야겠죠. 너무 한 측면에서 일찍 법의 가능성을 틀어막으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 법을 반대하고 걱정하시는 분들께도 이 이야기가 많이 닿으면 좋겠어요.
고영유
학교에서 민주주의의 역사에 대해서 배우고, 학자들에 대해서도 배우지만 사실 그 때 당시의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민주주의를 열망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거든요. 차별금지법 공부를 하면서 학교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지식들을 알게 되어 좋아요.
장혜영
마지막으로, 이 아티클을 읽으실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 등이 있으시다면 자유롭게 남겨 주세요.
요지경
바로 직전 차제알 모임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는 광장에서 “그렇구나, 알아두겠다!”를 듣고 모두가 그런 태도를 가지기를 소망했는데요. 저도 딸로 불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 이 트윗을 보고 무척 감동했고 주변 사람들이 이 정도의 생각만 가져준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저는 알아두겠다는 말이 정말로 정확한 ‘앎’을 담보하지는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기 위해서는 알아두겠다를 뛰어넘어 “아셔야 해요”를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국회 앞 여의도 공원에서, 광화문 광장에서, 남태령에서, 한강진에서, 그리고 종로와 명동에서 매일 평등의 가능성을 봅니다. 우리는 광장을 통해 주어진 조건이 다르더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서로에게 필요한 미래를 외쳤고, 그것이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동의했으며, 서로를 성별이나 나이 지칭이 아닌 동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아셔야 해요”라고 말하려면 “알아두겠다”라는 사회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많은 투쟁이 필요하겠지요. 어렵겠지만 저는 잘 살기 위해서 그렇게 노력하고 싶고, 함께할 사람들을 찾고 싶습니다. 차제알이라는 좋은 프로젝트를 통해 많이 배워서 보람차고 또 행복합니다. 남은 차제알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이 소중한 기회를 마중물 삼아 계속해 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예인
지금 SNS에 너무 많은 정보들이 범람하고 있잖아요? 가짜뉴스에 대해 좀 더 경계를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말을 100% 신뢰하는 것도 마냥 건강한 애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요. 우리가 타인에게 사고를 의탁하지 않을 때, 비로소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인권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도 책을 읽기보다는 트위터를 얼마나 더 많이 보는가로 경쟁을 하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어지러운 시국에서 여러 혼란한 정보들을 접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데 우리 같이 노력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제가 엄청나게 대단한 투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오히려 안전한, 정상성의 굴레에서 살아온 사람이라 생각하죠.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장애인이나 퀴어의 수가 적지 않거든요. 그럼에도 그들을 자연스럽게 만나볼 기회가 적다는 게 무얼 의미하는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무언가에 대해 잘 모를 수는 있어요. 하지만 충분히 경험해보지 않았는데도 단언하는 건 섣부른 일입니다. 그래서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두 좀 더 열린 마음으로 궁금해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서로를 좀 더 정교하게 미워하고, 미워하지 않을 수 있도록요.
고영유
모두가 어떠한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도 모르게 혐오를 하고 있을 수 있죠. 한번쯤은 함께 제대로 팩트체크를 해 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우리에게 좋은 것은 여러분들에게도, 그리고 모두에게도 좋습니다.
강다현
이 글을 읽으실 모든 분들, 누가 됐든 반갑고 함께 살아나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계신 곳에서 자유롭고 평온하시길 바랍니다.
장혜영
제가 너무 사랑하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이 이런 말을 했어요. “사회의 경험이 법에 반영되는 것은 당연하다. 법이 사람들의 생활방식에 관계없이 무미건조하게 논리적이라면 그것은 성공적인 제도로 자리잡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사람들이 겪어온 차별의 경험과 그 차별을 극복해온 경험이 반영된 법이 만들어져야 해요. 이런 도전과 극복의 경험이 수반하는 감정들이 이 작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럼 이상으로 오늘의 대담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