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당연한 걸 듣기 위해
이렇게까지
힘들었어야 하다니
장혜영
다시 돌아봐도 정말 긴장되는 순간이었어요. 헌법재판소 판결 요지에서도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군경의 소극적 임무수행 외에도 시민들의 저항 덕분이었다고 분명히 적혀있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익명의 말벌님을 비롯해 그 자리에 계셨던 모든 분들께 고개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하지만 한편으로 비상계엄 해제는 파면까지 이르는 긴 과정의 시작일 뿐이었죠. 그 후 넉 달, 어떻게들 보내셨나요.
익명의 고양이
내가 하지 않으면 줄어들지 않는 빨래와 설거지와 내가 솔질 하지 않으면 절대 지워지지 않는 화장실의 분홍색 곰팡이 자국과 내가 채우지 않으면 결코 채워지지 않는 고양이 사료통과 모래와의 시간이었죠. 나는 어쨌든 집에 혼자 남겨져 있는데 왜인지 모르게 그릇과 빨래와 그런 것들은 어째서 늘 2인분인지를 궁금해하며…
계엄 이후 마음이 제일 서글펐을 때는 키세스 시위 때였어요. 그때가 동거인 생일 무렵이었어요. 그래서 데이트를 했는데 데이트를 하자마자 동거인은 밤을 새러 바로 한남동으로 달려갔고 저는 집에 홀로 남겨져서 청소기를 밀었어요. 저는 다음날 출근이라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죠. 저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번갈아 출근을 해요. 그게 속상하면서 동시에 왜 집을 지키는 건 내 몫인가, 근데 이 인간 또 양말 뒤집어놓고 나갔네… 이런 빡침이 공존하는 나날이었고 그러면서도 계속 조마조마했어요.
특히 선고날짜 정해지고 선고 전날에는 밤을 한숨도 못자고 계속 자다 깨다 자다 깨다 했어요. 그리고 파면 선고가 ‘때려지니까’ 너무 신나서 일이 안 되는 거예요. 일이 진짜 많았는데 결국 반차 쓰고 나왔어요. 그런데 제가 자본주의에서는 해방이 덜 됐는지 파면의 기쁨에 겨워 더현대 팝업스토어에서 사고 싶은 잉크를 샀죠.
장혜영
기쁨을 표현하는 방식이 굉장히 자본적이었네요. (웃음)
익명의 고양이
하루하루 지나쳐올 때는 ‘아직도 날짜 안 나왔어 아직도 아직도’ 그런 마음이었는데, 이제 파면 이후 하루이틀이 지나고 사람들이 일상으로 복귀하기 시작하면서 지난 4개월을 바라보니까 되게 뭉텅이진 느낌이랄까, 뭉쳐진 하나의 날처럼 느껴져요. 되게 압축적이고 복잡한 느낌. 제겐 부끄러움과 집안일이 공존하는 나날이었어요.
익명의 말벌
뭉텅이진다는 말 되게 재미있네요. 저는 약간 아코디언 책, 그 이렇게 접어서 만드는 책을 쫙 펼쳐놓은 것처럼 느껴져요.
장혜영
확실히 현장에 있으니까 그 날들이 좀더 세세한 사건들로 느껴지는 걸까요.
익명의 말벌
기억에 남는 광장의 발언자들도 많았어요. 그리고 제가 1차 남태령을 못 갔어요. 특히 국회에서의 탄핵 이후에 광장에 못 나가는 것은 부채감이 크지 않았지만 남태령에 못 가는 것은 부채감이 컸어요. 루틴한 시위보다 경찰이 트랙터를 막고 있는 날 힘을 보태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죠.
하지만 되게 양가적인 마음이 들었어요. 광장에 있는 사람들이 광장에 없는 사람들에 대해 약간 비난하는 분들도 계셨거든요. 저는 그게 너무 이상한 거죠. 그럼 얼마나 광장에 나와야 비난을 면할 수 있는 거죠? 한 번 이상이면 되나요? 두 번? 아니면 세 번? 각자가 각자의 위치에서 다들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있는 건데, 마음은 다 같을텐데, 물론 전혀 아닌 세력도 있지만 탄핵을 원하는 이상 다들 비슷한 마음으로 있었을텐데 왜 저렇게 부채감을 주는 방식으로 운동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어요. 하지만 광장에 나오지 못하는 날 부채감을 느끼는 걸 보면 저조차도 그런 마음에서 자유롭지 못한 데가 있는 거죠.
국회에서 탄핵안이 통과되고 헌재의 시간으로 넘어갈 때까지, 그리고 한 3월까지는 마음이 막 들끓어서 나갔지만 그 뒤부터는 ‘아 오늘 나 안 가면 걔 혼자 깃발들고 있을텐데’ 이런 생각이 들어서, 미안한 마음에 계속 나갔던 것 같아요. 오늘은 진짜 쉬고 싶다고 말하다가도 그래도 누가 우리 깃발 찾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으로 나갔어요. 그런데 정말 누군가 깃발만 보고 우리를 찾아주고, 그렇게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서로 많은 얘길 나누지 않아도 되게 끈끈해지는 그런 과정 자체가 엄청 힘이 되기도 했어요. 그리고 공동의 적이 있으면 굉장히 끈끈해지는구나. 그래서 누군가는 아예 미워할 타깃을 정해놓고 조직을 만드는구나 싶기도 했어요.
장혜영
전략으로서의 혐오.
익명의 말벌
맞아요. 하여튼 뭔가 얼떨떨한 시간이었어요. 헌재가 시간을 끄는 것도 정말 화가 많이 났었는데 선고문을 보고 마음이 다 녹아버렸어요. 시민이 저항이 계엄을 막았다는 문구가 명시되어 있다는 것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장혜영
맞아요. 현장에서 들으면서 울 수밖에 없었어요. 익명의 기린님은 지난 넉 달 어땠어요?
익명의 기린
저도 부끄러움 같은 게 되게 컸는데, 사실 저는 나가려면 분명히 나갈 수 있는 날이 많았지만 힘들어서 정말 많이 나가지는 않았어요. 그런 것에서 오는 부끄러움도 커요. 하지만 부끄러움보다도 큰 마음은 광장에 나갔던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이에요. 그 사람들도 다 힘들었을텐데 나간 거잖아요. 그 힘듦을 무릅쓰고 자기 일상을 돌보지 못하면서까지 나가서 뭔가 잘못된 걸 바로잡겠다고 힘쓴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그 중 한 사람이 제가 활동지원을 하는 사람의 가족이었던 거죠.
그래서 저는 광장으로 나간 사람이 일상의 공간을 비운 동안 그 일상을 잘 지키는 사람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요. 일상을 지키는 사람이 있어야 광장에 나가서 엄청난 일을 하는 사람도 있는 거니까요. 우리가 과거에는 여성들의 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역사를 페미니즘을 통해서 이제는 인정하듯이 이렇게 일상을 지키는 것도 되게 중요하다는 것을 페미니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고도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이렇게 좀 자긍심을 느끼다가도.. 그런데 나는 너무 자긍심을 느끼기 좋은 처지인 거지.
익명의 말벌
처지라는 말이 재미있어요. 자존심을 느끼기 좋은 ‘처지’라니. (웃음)
익명의 기린
내가 돌보고 있는 누군가의 일상이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지를 생각할 때, 어찌보면 실로 엄청난 걸 가능하게 하는 사람을 지원하고 있으니까, 이번에 어떤 의미의 소명의식 같은 것을 맛본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계속 나가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아쉬움도 있어요. 사람들이 광장에서 경험한 것에 대해 SNS에서 공유하는 것을 볼 때 내가 그걸 한번에 잘 이해하지 못할 때, 혹은 나에게는 저 기억이 없다는 걸 체감할 때, 그리고 저 엄청난 현장을 나는 못 봤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 아쉬운 마음이 들어요. 그리고 아까 익명의 고양이님이 이 4개월이 하루처럼 느껴졌다는 것과 비슷한 얘긴데, 제가 파면 이후에 사람들하고 술 마시고 헤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말할 뻔한 거예요. 파면이 된 지금에야 진짜 새해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죠. 과장이 아니라 정말 어제쯤에야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아까 말이 갖는 힘에 대한 얘길 했잖아요. 윤석열이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그 말도 안 되는 말이 갖는 힘에 대해 느꼈다면 국회에서의 계엄 해제와 탄핵을 통해서 그 반대되는 힘을 느끼기도 했어요. 의사봉을 세 번 딱 두드릴 때. 그러니까 우리 시민들이 부여한 민주주의 정치의 권력이라는 걸 윤석열에게 한 번 느끼고, 국회에서 그 힘을 해제하는 순간에 또 한번 느낀 거죠.
그리고 이번에 헌재에서 파면 선고를 낭독하는 그 순간에도 한번 느꼈어요.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에 왜 이렇게 힘을 주기로 했는지가 헌재 결정문에 되게 잘 녹아들어 있었다고 생각해요. 헌재 결정문이 부족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쨌든 전원일치로 파면을 선언했을 때 그게 갖는 힘이 분명히 있었어요. 언어를 통해 사회가 규정되기 전에는 힘이라는 게 그냥 물리적인 힘밖에 없었을텐데 이렇게 민주주의 사회에서 말이 갖는 힘을 경험한 것이 되게 인생에서 큰 경험인 것 같아요.
익명의 고양이
저는 소위 ‘개빡쳤어요’. 이렇게 당연한 걸 듣기 위해 이렇게까지 힘들었어야 하다니.
익명의 기린
(웃음) 맞아요. 다만 우리가 되게 당연하지 않은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시간을 오래 살다가 오랜만에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지 않다고, 아닌 건 당연히 아닌 거라고 분명히 언어로 얘기해주니까 되게 많이 위안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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